결국 나훈아는 대한민국 가요사에 굵은 궤적을 남기며 “나훈아류” 의 완성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다. 부연하자면 남인수 이후의 대한민국 전통가요를 사실상 집대성하였고 그 질과 양을 무한정 확대하면서 그 문법을 완성 했던 것이다. 전통가요의 화려한 맛과 기술 등 타 장르의 음악에 뒤지지 않는 음악적 성과를 통하여 수많은 후배가수들에게 하나의 典範(전범)을 만들어 주었고 “나훈아류”의 완성을 통하여 대중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던 것이다. 나아가 일본 엔카와 겹치는 소위 코부시 창법 (미소라 히바리, 미야꼬 하루미, 이즈키 히로시 등)의 단조롭고 천편일률적인 맛을 극대화시켜 한국적이고 대륙적인 절묘하고도 중후한 맛으로 승화시켜 한국식 트롯을 완성한 창조자였다. (여기에서 70년대 초 · 중반 깔끔하고 파워풀한 절정의 나훈아 목소리에 매료된 소위 정통 팬들은 80년대 이후 부른 노래들에 대하여 가성적 측면에서 비토하는 경향도 발견되지만 그건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80년대 이후 나훈아 음악적 변신의 시도는 물론 목소리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오히려 장르와 트롯의 다양성을 추구한 것으로 가요계 흐름의 경향을 앞서 포착한 획기적 일로 평가받아 마땅하며 거기에 더하여 인생과 철학을 담은 가사위주의 묵직한 음악적 변신으로의 대전환은 나훈아가 진정 위대한 대중음악인 으로의 변신이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잠시 나훈아류의 핵심에 관한 가요전문가와 최근 트롯맨(트롯경연자들) 의 일치된 의견을 현출해 보면 이렇다. "나훈아의 저음은 단순한 저음이 아니라 힘 있는 저음이고 저음에서도 깊은 매력과 울림을 준다, 고음 역시 단순한 고음이 아니라 한과 절묘한 꺾기, 비브라토와 어우러지면서 사람의 마음을 전율케하는 그 무엇을 드러내고 있다" "단순히 음표에 따라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음표 뒤에 숨어있는 희노애락을 끄집어내는 마력이 있다, 아직까지 노래에 관한 한 더 이상의 진화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라고 이처럼 가황의 등극은 실로 어렵고 괴롭고 至難한 세월이었다. 이 끝없는 향연은 무언가 말 못 할 내재적 콤플렉스, 한의 기운이 뻗쳐있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자존심과 정체성의 덩어리가 목소리 하나하나에 응축되어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그는 단순한 기인이거나 괴짜는 아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자초한 언더요 기인인 것 같다. 그런 정서의 밑바닥에는 천재와 일맥상통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평범, 시류의 영합, 답습은 오늘의 사회를 오늘의 가요계를 견인해 내지는 못한다. 욕을 실컷 먹어도 사회를 선도하고 이끌어 가는 것은 천재요 기인들이기 때문이다. * 방랑시인 나훈아 * 이제 그런 나훈아가 돌아왔다. 괴로웠을, 기나긴 방랑의 여정에서 에고를 넘고 곤륜산을 넘어 그가 돌아왔다. 예술적 성취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위하여 스스로를 유배했고 세상의 몰이해를 눈빛 하나로 잠재우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가황 나훈아의 귀환은 필연이었다. 사실 우리는 그의 개인적 삶을 비토할 아무런 권한도 이유도 없다. 음악적 수혜자로서 그의 고투를 응원해 주고 그의 전도를 진심 으로 축하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 나훈아는 콘텐츠의 바다였다. 그것을 우리는 읽어 내지 못했고 사회적 무관심, 비토, 편견으로 그것을 견인해 내는 무언가의 동력과 발화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 비로소 나훈아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고희가 넘긴 나이에 그의 정체성이 오롯이 드러나면서 음악적 역량이 폭발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발표하는 곡들마다 단순 트롯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분화와 장르간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는 경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17년 돌아온 이래 매년 10여 곡의 신곡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대중음악의 분화와 질 높은 히트곡으로 대중음악계를 앞장서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경연대회에 나온 손자뻘 되는 트롯맨들이 그의 신곡을 앞다투어 부르고 있고 거의 대부분의 경연 참가자들이 그를 롤모델 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그의 노래 하나하나에 얽힌 수만 가지의 이야기를 다 할 순 없다. 그러기에는 지면이 너무 짧고 오랜 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나훈아 음악의 토양과 본질, 가수로서의 정체성과 훌륭함을 개괄적 으로 노크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그의 無邊廣大(무변광대)한 평전을 용기있게 기술할 날을 염원해 본다. 작금 역사와 정의와 진실과 자유가 흩날리는 이 엄중한 시기에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방랑자 나훈아가 부럽다. 인류철학사의 시조인 소크라테스를 “테스형”이라 부르면서 스스로 지식의 짧음을 고백하고 생의 미로에서 갈 곳 몰라 울부짖는 그의 솔직담백 함이 나를,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아닐까 ! 참으로 기쁘다. 이 만추에 곰 삵은, 아름다운 낙엽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온 대중가수 나훈아가 있기에. 나훈아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으로 사랑을 정의했고, "머나먼고향"과 "물레방아도는데"로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녹슬은 기찻길"로 한민족의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노래하면서 전통가요를 평정했다. 그리고 21세기 "테스형" 으로 가요의 철학화와 불멸을 새겼다.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그의 귀환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不遠將來 음악적 성취를 통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거장의 모습을 보고 싶다. 끝.
2020. 11. 11. 만추의 서피랑을 바라보며 김 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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