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독서목록에 켈리 맥고니걸의 "움직임의 힘"을 읽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머리말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이야기했다. “움직임은 자기 계발이요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결국 움직임의 존재이다. 움직임은 자신을 돌보는 방식이자 난관에 맞서는 기회이며 친구를 사귀는 터전이다. 행복은 건강한 상태에서가 아니라 바로 움직임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라고 인간 아니 모든 생명체는 결국 움직임의 존재이니까 ! 철학자 더그 앤드슨은 움직임에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고 한다.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인간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한 자리에 정지해 있고 누워만 있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 그건 이미 죽은 사람이다. 저자는 2,000년경부터 피트니스 강사로 춤, 요가, 단체 운동을 가르치며 육체적 운동이 어떻게 현대의 우울증, 불안, 외로움 같은 전염병의 강력한 해독제가 될 수 있는지를 연구한 내용을 발표해 왔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움직임의 힘은 자기 계발에 관한 내용이나 운동이 주는 이득에 관한 내용을 넘어서 인간의 본성과 생명체의 숙명을 철학적으로 탐지하고 있다는 것에 눈을 돌려야 하고 보상의 체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의 바탕 위에서 움직임과 인간 본성에 대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 역시도 스무 살 때까지 소심함과 수줍음, 불안감으로 하루도 자신만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삶을 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에어로빅 강사 오디션에 참가하려고 캠퍼스 내 운동 스튜디오 앞에 서 있었고, 죽어라 연습을 했기 때문에 자면서도 안무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 였지만, 당일 역시 극심한 공포감이 밀려들었고 별안간 속이 메슥거렸다고 한다. 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었던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지경이었고 심장이 떠질 듯 쿵쾅거렸다. 증폭되는 불안감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내하기로 작정하였고 결국 오디션을 통과했고 그 결정의 움직임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실토하고 있다. 그토록 자신을 옭아맸던 굴레를 벗어던졌다. 이러한 경험은 비단 저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걷기, 달리기, 수영, 댄스, 자전거 타기, 요가, 각종 구기 종목 등 뭐든 상관없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은 목적의식이 더 뚜렷하고, 감사와 사랑과 희망의 감정을 더 많이 경험한다. 공동체에 대한 유대감이 더 강하고, 외로움에 시달리거나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더 낮다. 이는 사회경제적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며, 어느 문화에서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게다가 신체 활동의 심리적, 사회적 효과는 특정한 신체능력이나 건강 상태에 좌우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지체장애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심각한 질병에 걸린 사람, 심지어 호스피스 케어를 받는 환자들 사이에 서도 효과가 입증되었다 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의사가 혈당을 더 잘 조절하거나 혈압을 낮추거나 암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운동하라고 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인류사를 통틀어 움직임의 핵심 목적은 질병 예방이 아니었다. 신체 활동은 곧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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