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간 곳은 문경군 산북면 전두리에 위치한 대승사였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올라갔다. 절 표시는 되어 있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았고 땀이 비오듯 흘러 잠시 땀을 닦으면서 바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어머니가 건네준 한산도 담배의 맛은 나의 코를 부드럽게 위무했지만 돈이 없어 신문지에 연초를 말아 피우시던 어머니의 생각에 울컥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식이 잠시나마 먼 길을 간다고 없는 돈에 고급담배를 사 주신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무심하게 좋아했던 나의 철없는 가벼움이 부끄러웠다.
이미 해는 기울어 나무 그림자가 마치 키 재기라도 하듯이 죽 죽 늘어서 기 시작했고 붉은 저녁노을이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건네준 봉투 생각이 나서 주머니에서 꺼내 보았다. 꼬깃꼬깃하게 접은 1,000원 짜리 80장, 80,000원이 들어 있었다. 누런 비료 포대를 뜯어 쓴 어머니의 서투른 글씨가 보였다. “절간에 줄 두 달 밥값” 그것을 보는 순간 나의 마음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의 볼을 타고 흘렀고 결국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절간에 도착하여 스님의 안내로 방 하나를 배정받았다. 4개의 방 중 최악이었다. 졸졸거리는 물소리, 스님의 염불 소리가 들리는 불안정한 방이었다. 이른 저녁을 끝내고 방 안에 앉았다. 적막했다. 유월이라 해가 진 어스름녘이었지만 밖은 밝았고 간간이 절간을 오가는 신도들의 소리가 들릴 뿐이다. 8시가 되니 주위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전기는 들어와 있었으나 5촉 짜리 전구였기에 차라리 신도들이 가져다 놓은 촛불이 더 밝고 좋았다. 방문을 잠그고 책을 폈다. 공부가 되지 않았다. 대신 엉뚱하게도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성공과 출세는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돈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등등 온갖 관념어들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부엉이 소리,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 졸졸거리며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들릴 뿐이다. 아무리 책을 들여다보아도 도무지 책이 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공부하러 와서 이게 뭐야! 며칠 동안은 밥 먹고 옆 방 고시생, 글쟁이들과 산책하다 들어와서 온갖 잡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자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느 날 주지 스님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학생, 잠시 들어가도 될까? 스님의 일갈이 나의 영혼을 깨웠다. “절간에서의 공부는 말이야, 눈을 크게 뜨고 큰 기대를 가지고 공부가 잘될 듯이 생각하면 오히려 잡음만 생기니 마음을 내려놓고 눈은 반쯤 감은 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마치 몸살 후 밥맛이 돌아오듯이 어느덧 책이 눈에 들어오는 걸세” 정말 스님의 말이 맞았다. 나흘이 되는 날부터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이른 저녁을 먹고 하루 14시간의 강행군 이 시작되었다. 배가 무척 고팠다. 보리밥에 산나물, 된장, 장아찌가 고작인 절 음식이 소화가 잘되니 소화력이 왕성한 나의 허기를 증폭시켰던 것이다. 60세 정도의 노 스님이 그냥 나이가 잡수신 것이 아니었다. 누룽지 죽과 된장과 고추를 가져다 주셨고 간간이 옥수수를 삶아다 주셨다. 너무나 고마웠다. 지금도 그때의 누룽지 죽과 찐한 토종 된장에 찍어 먹던 매운 고추의 맛을 잊지 못하겠다. 그러한 일상의 반복이 지루했지만 나름의 목적이 있었기에 견딜만했다. 간간이 절 뒤편 큰 바위 그늘에 앉아 들려주시던 스님의 말씀, 옆 방 고시생들과 문학 지망생들의 열띤 토론과 독서, 그러한 모든 추억이 41년이 지난 지금도 한 폭의 수채화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나만의 정서를 견인해 주고 있다. 7월 초순 어머니가 오셨다. 공양간에 바칠 가래떡, 시루떡, 내가 좋아하는 물김치 등을 한 보따리 가지고 오셨다. 반갑다 못해 눈물이 났다. 그 더운 여름날 밭매고 김매고 하시느라 얼굴이 새까맣게 타 있었다. 거기에다가 아버지의 주사, 변변찮은 식생활 탓인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초췌한 얼굴이었다. 어머니가 가여웠고 불쌍했다. 스님과 무슨 깊은 애기를 나누는 것 같았고 연신 스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아마도 자식을 맡긴 어버이의 간곡한 염원의 말씀이 었을 것이다. 잠시 어머니와 공양간에서 점심을 먹고 방으로 갔다. 어머니가 나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이놈아, 공부가 잘 되나? 힘들지?” 응, 난 괜찮아, 공부도 잘돼! “다행이다. 밥 잘 먹고 배고프면 스님에게 더 달라고 하고 담배는 폐에 안 좋으니까 많이 피우지 말고” 그러면서 흰 봉투 하나를 꺼내 놓았다. 순간 처음 떠나올 때 어머니가 건네준 봉투가 생각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