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공직생활
이름     김춘근 날짜     2024-11-05 16:48:50 조회     17

수원의 마지막 밤

 

자정으로 향하는 시계 바늘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밤을 재촉한다

밖에는 온종일 부슬비가 내렸다

습한 기운이 온 대지를 감싸고 있지만 그래도 연수원의 침구는

따뜻한 기운으로 포근하다.

마지막 무언가의 생각을 뇌리에서 비우지 않은 이상

이 밤이 이렇게 끝날 수만은 없다는 불안한 기운이 엄습한다

술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실컷 취하고 싶다

잠시라도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으니까 !

그러면서 불현듯 그래도 나만큼 행복하고 누린 삶을 살아온

사람도 드물다는 상념이 스쳐간다

 

이 밤이 새고 나면 가야할 길,

낙타에 몸을 싣고 메카를 찾아가는 캬라반의 운명처럼.

인생은 고달픈 나그네의 길이라 했던가 !

어차피 한 곳에 머물지 못할 운명이라면

또 주적 주적 걸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들 인생이 아니겠는가 !

또 다른 목적을 위하여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공직 생활,

수십 차례 찾아와서 정들었던 마지막 연수원의 밤,

마지막이라는 말이 왠지 모를 서글픔과 비장감과 애수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이고 운명이면 어찌하랴

이제 머언 그리움으로 남을 마지막 수원의 밤

왠지 서글퍼지고 눈물이 난다

 

가도 가도 언제나 제자리길,

내 가는 이 길의 시점은 어디였는지,

나에게 고향(?)은 있었는지, 있었다면 고향은 진정 어디메인가

출발지도 목적지도 알 수 없이 귀소의 본능마저 상실해버린

운명적으로 걸어온 이 길,

관성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삶,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고야 말 운명이거늘........

 

또 언젠가 메마른 대지를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어쩌다

수원 하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문득 내 얼굴을 스치면

나는 홍조를 띠며 그 바람을 애써 놓치지 않으리......

그리고 수원 법화산의 마지막 이 밤을 영원히 기억하리라

 

인생은 낙엽처럼 아쉬움과 아픔을 간직한 채

떠나야 하는 나그네, 내 어이 오늘과 같은 나그네의 밤을

생각하지 못했던가.

 

내가 머문 시간 시간들을 증거해 줄 이 법무연수원,

이제는 내 머뭄의 흔적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으리

 

창밖 뿌연 가로등 아래 간간히 들려오는 차량의 경적소리가

깊은 밤임을 말해준다

아 아 왠지 목 놓아 울고 싶은 이 밤.

밤안개가 흘러가는 미로 속으로 가야 할

이 나그네를 두고 이렇게 마냥 깊어만 가는가 !

 

 

 

 

2011. 12. 12. 12:00

 

법무연수원 201호실에서

 

 


  한마디하기(최대 255자 까지)
이름 :  비밀번호 :  
Com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