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를 다시 생각합니다
이름     김춘근 날짜     2014-10-17 15:07:10 조회     1260

얼마 전 해운대에 있는 한 고층아파트에서 불이 나서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파트 몇 채가 전소되었는데 그중 한 채가 제가 아는 분의 집이었습니다.


60대 중반인 그분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요. 재산적 손해는 말할 것도 없고 평생이 녹아 있는 많은 물건들이 재로 변해 버렸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소리치고 눈물을 흘려도 시원치 않을 상황이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위로해드릴 겸 점심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표정은 의외로 매우 밝았습니다. 억지로 꾸민 표정이 아니라 솔직한 표정이었습니다.


“심정이 어떠신가요.”라는 제 질문에 그분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남은 것은 제 몸과 머리 속에 있는 추억뿐이지만 마음은 매우 홀가분합니다. 그동안 무슨 이유로 그렇게 소유에 집착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인생관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모은다는 것이 정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베풀고 나누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타버린 물건 중에 아쉬운 것이 있으실텐데요.”라고 묻자 그분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마산이 낳은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선생님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젊은 날, 회화에도 자질이 있어 훌륭한 데생 작품을 몇 점 그렸습니다. 그중 여섯 점을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신 선생님이 세계적인 조각가가 되신 후 저에게 젊은 시절 자신의 혼이 깃든 그 작품들을 되팔 수 없겠냐고 문의하셨습니다. 간곡하게 부탁하셨지만 저는 거절하였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문신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미망인께서 찾아오셔서 똑같은 제의를 하셨습니다. 마산시에서 건립한 문신미술관에 문신 선생님 작품을 모두 기증하려고 하는데 그 6점의 데생작품이 꼭 있어야만 문신 선생님의 예술역정을 완성할 수가 있으니 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도 좁은 소견에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 작품들이 이번에 소실되었습니다.
저는 한없이 후회하였습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가지고 있다가 문신 선생님께 큰 누를 끼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재산을 잃은 것보다도 더 안타깝습니다.”


그분의 표정에는 진정 후회와 아쉬움이 서려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도 의연하시던 분이 다른 분의 젊은 날 작품 몇 점에 이토록 안타까워하시는 것에 놀랐습니다.


점심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과연 소유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사회적 신분을, 자신의 지적 수준을 드러내기 위해 많은 것을 소유합니다. 그런데 그 소유가 나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그것이 없어진 순간 나는 ‘무’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많은 것을 소유할수록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고 그 갈증은 더 커진다는 사실을 이론으로는 잘 알면서도 현실에서는 또 하나의 예쁜 물건에 왜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요. 집이 모두 불타 없어지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그 무엇을 미리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일까요.


문득 대학교 1학년 때 읽었던 에릭프롬의 ‘소유나 존재냐.’는 고전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소유적인 삶은 궁극적으로는 대상(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지식이든)을 지배하려는 것에 불과하고 결국에는 지치고 소외된다고 말합니다.


에릭 프롬은 지식에 대한 소유와 존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지식은 진실을 소유함을 뜻하지 않고 표면을 뚫고 들어가 진실에 한층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비판적으로 능동적으로 고민하는 것을 뜻한다. 소유양식에 있어 최적의 지식은 ‘보다 많은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지만 존재양식에 있어서 최적의 지식은 ‘더 깊이 아는 것’이다.”


아마도 문신 선생님의 데생 작품을 소유하려던 그분의 생각은 소유 양식적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릭 프롬은 우리들에게 오히려 그 작품들을 미술관에 기증하고 다른 작품과의 연장선에서 감상하고 이해하여 문신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존재 양식적 삶이 더 바람직한 삶의 양식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또 하나의 소유를 위해 욕심을 부리시나요. 아니면 그 무엇을 더 깊이 알기 위해 노력하시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글 :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조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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