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얼굴에서 삶을 읽다 링컨의 얼굴을 보면 절로 발걸음이 멈춰지고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별로 잘 생긴 얼굴도 아닌 것 같고 엄숙함과 딱딱함이 묻어나는 얼굴인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 어떤 부정직하거나 간사한 사람이 와서 상대방을 음해하더라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정직한 가치판단을 내려줄 것 같은 그런 심지 깊은 사람의 얼굴로 보여지기 때문이 아닐까 ? 그래서 그냥 믿음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인 것이다 항상 그의 얼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심과 우수로 가득차 있다. 마치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연민도 한몫하는 것이 아닐까 ?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슬픈 얼굴로 만들었을까 ! 그의 삶의 이력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미국의 재벌 카아네기는 링컨을 흠모한 나머지 그의 유품들을 거액을 들여 사들였다. 그러나 링컨의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래서 그의 생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만약 링컨의 웃는 모습의 사진을 소유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거금을 주고 서라도 사들이겠다고 했다. 링컨의 사진 속 얼굴에는 웃는 모습이 없다. 우리 같이 상상해 보자 ! 링컨이 파안대소는 아니더라도 싱긋 웃는 모습의 사진이 있다면 그 값어치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 그 웃는 모습의 얼굴이 얼마나 우리 인간에게 무한한 신뢰와 기쁨을 줄 수 있는가를 ...... 온갖 괴로움과 고통으로 산화가 되고 파편이 되다시피한 그의 얼굴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맛볼 수 있지 않겠느냐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애잔하게도 하지만 깊은 신뢰와 믿음을 동반한 다는 것이다. 에이브라함 링컨 ! 독수리는 발톱이 있어도 감추고 있을 때 더욱 아름다워 보이고 인간은 힘이 있지만 겸손으로 감싸고 있을 때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위대한 사람이란 여유 있는 사람이다. 여유가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용량이 크다는 말이다.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그것을 수용할 용량이 있다는 것 그만큼 그릇이 크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전긍긍하고 소심하고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안다는 뜻이다. 왜 그래보았자 별 소득이 없고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망스럽고 철이 없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여유있는 사람이란 유머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유머가 없는 사람은 민주사회의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도 과히 이치에 어긋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링컨은 아주 유우머가 풍부한 사람이다. 그 한 예를 들어보면, 어느 날 백악관 사무실에서 일을 보다가 그 옆의 대기실에서 여러 사람이 앉아 무슨 토론을 열심을 하는 것을 보았다. 링컨 왈,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물었다. 그 중 한사람이 “사람의 다리 길이는 어느 정도가 이상적이고 적당한가‘ 라는 문제를 가지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라고 대답하자, 링컨은 마치 자신의 큰 키와 긴 다리를 조롱한다는 느낌을 일순 받았지만 즉시 이렇게 합리적인 대답을 했다고 한다. "사람의 다리야 땅에 닿기만 하면 되지 조금 길고 짧은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소, 아무리 키가 커도 겨우 한 자 차이인 것을 가지고"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한마디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너무나 넓고 포괄적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범인은 쓸데 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시간을 낭비하지만 거인은 불필요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재빨리 방향전환과 다음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링컨이 암살된지 벌써 16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나 그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링컨은 이런 말은 한 적이 있다. "모든 사람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 후 남북전쟁, 게티즈버그 연설, 그러나 청사에 빛난 것은 그의 극적인 죽음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남북전쟁 승리 후 남부재건이란 엄청난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으나 포드 극장에서 죽임을 당함으로서 그의 암살이란 비극이 위대함으로 승화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적군의 총탄에 맞아 운명을 달리한 것처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