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의 행복 이 무더운 날 고전읽기에 몸을 맡겨보자는 제안을 드립니다. 고전이 지금의 우리에게 다소 익숙치 않고 낮설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러기에 고전의 가치와 의의가 있다는 게 필자의 믿음입니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도발적이며 독자의 평온을 뒤흔들어 놓는데 .. .. .. 카프카는 “파국”처럼 우리에게 다가드는 문학작품들, 우리속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숴버릴 작품들을 바란다고 했다. 그런 작품들을 우리는 “어느 혹한의 겨울날 숨쉴 때마다 얼얼한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살을 파고드는 것처럼”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닥뜨려야 한다. 그렇기에 고전읽기의 모험은 자기 마음과 사유의 끝없는 확장이다. 자기확장이란 자아형성을 포함하여 자신의 성장 잠재력을 최대한 키우고 실현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은 “기지개켜기 일명 스트레칭”이라고 부른다. 부모가 한창 커 가는 아이들의 팔 다리를 쭉쭉 당기듯이 고전은 독자의 몸과 정신을 사방팔방으로 쭉쭉 당겨준다. 니체를 읽으며 거기에 흠뻑 취해 니체의 질료가 신탁인 듯 떠 받들고 , 칼 맋스를 읽고는 맋스주의의 지극한 신봉자가 되는 등 고전들이 제시하는 자아상을 걸쳐보는 과정에서 나의 독특함이 생성될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단련과정을 통해 안개속에서 서서히 나의 정체성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는 뜻이다. 결코 개인의 자아나 정체성의 확립은 거울 들여다보듯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많은 불면의 밤, 혼란의 도가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로의 과정,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새벽이 오는 것이다. 방법은 하나의 텍스터의 의미를 환원적으로 통제하려 들지않고 텍스터 자체의 견지를 존중하는 것, 또 텍스터를 섣불리 고발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텍스트에 비추어 스스로를 심문하는 것이야말로 열린 독서의 자세이다. 그러니까 완전히 무장해제된 채로 만신창이로 휘둘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일종의 매저키르트처럼 텍스트에 의해 마구 휘둘리고 상처입고 충격받는 것을 즐거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난 복카치오에 대한 놀라운 발견을 했다. 즉 그릇된 관념에 함몰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우리는 미디어라는 수렁에 빠져 우리 자신의 소중한 기억들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고전은 마치 낮선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울 수 있었다. 여행자가 예기치못한 확고한 믿음이 눈을 뜬 입문자가 된 듯한 심정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낯선 세계로의 여행, 위대한 존재들과의 가슴 두근거리는 만남이다. 때론 엄청난 집중력과 고생을 요구한다. 칸트나 헤겔과 같은 존재를 만날 때는 엉금엉금 기어 가다가 전력을 다해 돌진해야 한다, 글의 도도한 흐름을 탈때까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늦은 밤 텍스트들을 소리내어 읽기도 해야한다. 고전읽기는 단순히 즐거움의 차원에서만 바라보면 곤란하다. 만약 즐거움의 폭이 용접밀폐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즐거움도 그 자체로는 충분치 않고 계발이 필요하다. 즐거움이 독자의 사고에 천착되어 무지와 편견에 의해 무장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큰일이다. 독서가 허세와 오만의 독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행위는 일상성에 갖힌 편견과 졸아든 감동성을 환기하는 적극적인 삶의 행위여야 하기 때문이다. 고전을 열린 자세로 읽다보면 우리는 숨겨진 편견들이 고스란히 드러할 수 있고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 지를 알게 해 준다. 이 더운 여름날 고전읽기는 우리에게 밀도있는 시간, 질 높은 사유의 세계를 제공해 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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