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속에 담긴 삶 비기란 말이 있다. 불가에서 인간을 슬픔의 그릇이라고 표현하는 말이다. 고해란 말도 있다. 인생 자체가 고통의 바다란 뜻이다. 많이 살지 않았지만 살아보니 그런 것 같다. 그렇다, 인간을 슬픈 존재라고 해서 가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토마스 홉스는 라바이어던에서 “인간은 늘 괴롭고 더럽고 빈곤하고 야만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너무 짧다“ 라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 아마도 인간이 욕망의 화신이고 희노애락을 주관하지 못하는 존재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닐까 자위해 본다. 욕망을 따라 살아가다 보니 늘 번뇌가 곁을 떠나지 않는다. 지위가 올라가고 돈을 벌고 좋은 직장이 있어도 마음 한구석 에 남아 있는 공허함은 채울 길 없다. 진정 내려놓지 못하고 거기에다가 무지와 주관이 마음속에 바위처럼 자리 잡고 있기에 표류하고 있는 것이리라 세상살이 모두가 그렇고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철들어 부모를 모시려 해도 돌아가시고 자식 키우는 일도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번뇌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요인이 누구에게나 다양하게 들러붙어 있다. 슬픔의 극복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실로 피나는 자각과 하심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질 높은 삶의 희열이다. 더 나아가 슬픔이 삶에 미치는 공과와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깊이 있게 전개된다면 더욱 품격 있는 노후가 되겠지만. 나는 아무 문제없어. 행복해, 라고 떠벌리는 사람치고 진짜 행복한 사람 없고 아마도 행복을 위장하고 성공을 자랑하는 속물들이 아닐까 ? 적어도 랄프 왈도 에머슨의 성공의 의미도 모른 채 말이다. 이제 이순을 넘어서인가 가끔 삶을 뒤돌아 볼 때가 있다. 무시로 인생을 기승전결로 나눠 보는 이상한 버릇도 생겼다. 태어나서 공부하고 직장을 얻어 사회에 나가는 시점인 25∼30세 까지가 “기”에 해당할 것이고 좋든 싫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회생활을 하는 55∼60세까지가 “승”에 해당할 것이고 퇴직 후의 또 다른 제2의 전성기인 75∼80세 까지가 “전”에 해당할 것이고, 개인적으로 이 시기를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 생각하지만. 그 이후 죽음까지가 “결”에 해당한다. 고 분명한 것은 “결”의 시기에 도달했다고 느낄 때쯤 반드시 못난 회고록 한 줄 쓰고 싶다. 이제 격동의 기⦁승이 끝나고 “전”에 한참 접어들어 질주하고 있다. 흔히들 인생의 끝물이라고 생각되어질 나이지만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인생의 황금기다. 100세가 넘은 모 철학자도 말했다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는 60∼80세 정도라고“, 아마도 나름 살아온 인생살이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에로스가 아니라 로고스의 삶을, 형이하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의 삶을, 견고하지만 너그러운 삶을 살아갈 때가 되었으니 한 말이라 추론해 본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이기도 하지만 영고성쇠의 파노라마 같다. 끝없이 공부하고 고뇌하면서 살아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진리이고 행복의 필요조건임을 알아챘다. 모든 위인들이 그랬지만 평생 청한의 삶을 이루고자 기행과 고통으로 극복의 삶을 견인했던 매월당도 그러지 않았던가 ! 생육신의 일원으로 수양대군에 대항하고 유학자의 삶에서 방랑하는 승려의 삶으로 다시 유학자와 농민의 삶으로 그리고 수행하는 도인의 삶으로 평생 떠돌았지만 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였고 끝없이 고뇌했다. 그러기에 그의 삶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때론 사는 것이 힘들 때 인류 지성사를 견인했던 위인들의 삶을 조망하면서 그분들의 삶 일부를 조금이라도 덜어내어 내 그릇에 넣고 비벼내고 싶은 강한 욕구가 일 때도 있다. 오늘따라 사무실로 흘러들어온 따스한 겨울햇살을 벗 삼아 찐한 커피 한 잔 속에 삶의 의미를 되새김질 해 보는 여유가 참 행복하다. 2021. 2. 18. 김 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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