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군에서는 3월 23일 장날을 기해 5,000명의 장꾼들이 시위운동을 벌였으며, 4월 2일 다시 5,000명이 모여 제2차 시위운동을 전개하고 주재소와 우편소를 습격하였다. 조선국권회복단의 일원이었던 진전면 卞相泰가 중심이 된 진전면 시위대는 28일 진전면 고현리 시장에서 500명의 시위대와 시위운동을 벌이며 진동면 일본 헌병주재소로 향하였다. 증파된 일본군이 시위대를 총검으로 해산시켰다. 4월 3일 三鎭의거로 불리는 鎭田面·鎭北面·鎭東面 연합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진전면 양촌리 냇가에 3,000여 명의 주민들이 진동면 주재소로 향하다 헌병대의 발포로 사망자 8명, 부상자가 22명에 이르자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일본 헌병대에서 마산의 일인 병원에 부상자들을 치료하게 하였으나, 주민들은 이를 거부하고 애국성금을 거두어 마산과 진주의 한국인과 미국인 경영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였다. 같은 날 웅천면 마천리에서는 500명의 주민들이 시위운동을 시작하여 웅천읍에 이르러 2,000명으로 불어난 시위군중과 함께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11일 가덕면 가덕진에서도 주민 300여 명이 모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29일 상남면 사파정에서 숭광학교 애국학생 수십 명이 시위운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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