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 모차르트
이름     김춘근 날짜     2015-02-25 12:45:35 조회     1595



모차르트는 1756년 오스트리아의 찰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7남매가 있었으나 대부분 일찍 세상을 떠나고 모차르트와 그의 누나 난넬이


생존했을 뿐이었다.


음악가인 아버지 볼프강 레오폴트의 덕분에 일찍이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유럽 전역에 걸친 음악여행을 하게 된다.


뮌헨을 거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도착한 모차르트 일행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당시의 여제였던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연주하는 영광을 얻었다.


이때 벌어진 유명한 일화가 있다.


모차르트가 실수로 넘어지자 비슷한 또래의 소녀가 달려와서 볼프강 모차르트를


일으켜 주게 되었다. 이때 모차르트는 그 소녀를 보고 “고마워요 내가 크면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소녀가 바로 그 유명한 "마리아 앙투아네트" 공주였던 것이다.


훗날 그녀는 비운의 프랑스 왕비가 된다.


만일 모차르트의 말대로 두 사람이 결혼했다면 마리 앙투아네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단언할 순 없지만 적어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극은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해 본다.



“아마데우스” 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죽음을 앞둔 궁정 음악가 “살리에리”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면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향한 질투심에 불탄 나머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고백인데,


영화에서 살리에리는 신에게 이렇게 울부짖는다.


“하느님 !, 왜 하필 모차르트입니까? 왜 하필 저 망나니 같은 모차르트에게 재능을


주셨습니까? “


뛰어난 궁정 음악가 살리에리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를 향한 불타는 질투심을 영화화


했을 정도로 모차르트는 인류 역사에 몇 안 되는 천재였다.


그가 얼마나 천재였는지를 알려주는 일화는 너무나도 많다.


 


모차르트는 이 뛰어난 재능으로 인류 음악사를 빛냈던 것이다.


바흐나 헨델의 바로크 시대의 대위법 대신 화성음악을 중시하고 소나타 형식을 발전


시켜 고전주의의 문을 열었고 주옥같은 오페라 작품들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등 그가


남긴 음악사적 업적은 실로 방대하다.


 


그런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이 천재는 무척 어린애 같았다고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인 데다 변덕스럽기까지 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


먹었다고 한다.


“천재면 뭐하고, 위대한 음악가면 뭐해,” “인품이 엉망인 걸”


이렇게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의 성품을 이해하고 음악을 이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재를 이해했다. “인품까지 훌륭한 성인은 아니지만 남에게 해악을


끼친 적은 없잖아? 인류에게 남긴 음악의 가치에 비한다면 그 정도 흠은 애깃거리도


못돼“ 라고.....


이러한 성격의 태동은 그의 못생긴 외모와 작은 키 때문에 열등감이 있어 주위 사람들


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머리가 좋은 만큼 사회성까지


좋지는 않았나 봅니다.


이처럼 천재 특유의 고집과 괴팍한 성격 탓에 유달리 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너무 어린 나이에 음악 천재로 이름을 날렸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겼다고도 합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또래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면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 필요한 예절이나 상식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음악적으로 뛰어났지만 그 밖의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능력 따위에는 많은 결점을 드러냈고 관심 또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은 그를 “하늘에서 잠시 쫒겨 난 음악천사” 라고 불렀다.


하늘에서 말썽을 피우다가 인간 세상으로 쫒겨나, 천상에서나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을 남겨놓고 일찍 돌아간 천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잠시 거의 같은 시대에 살다간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이 친절하고 상냥하고


모범적인 인생을 오랫동안 살다간 것에 비교하면서 감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신은 천재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비범한 천재의 광기를 쉽게 인간 세상에 허용하지 않은 것인지 35세의 짧은 생애만


허용했던 것이다.


 


모차르트의 아이 큐는 230-250정도라고 한다.


인류 최고의 천재답게 그의 행적에는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줄을 이었다.


다섯 살 때 작곡을 시작해서 여덟 살 때 "교향곡 제1번"을, 열한 살 때 오페라 "바스티안과


바스티엔"을 작곡하였다. 열네 살 때는 아버지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다가 11분짜리


"알레그리"가 작곡한 합창곡 "미세레레" 곡을 단 한 번 듣고 정확히 기억해서 악보를 적어


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원래는 이 곡은 절대로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게 되어 있는 극비였지만 교황은 모차르트에게 벌을 주지 않았다.


그의 놀라운 재능에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초능력에 가까운 그의 천재성은 이 세상에 머문 35년 동안 계속되었다.


한 곡을 만들기까지 여러 번 수정을 거쳐야 했던 여느 음악가들과 달리 모차르트는


작품을 쓰며 수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마치 머릿속에 있는 음악을 그대로 옮겨 쓰듯 거침없이 써 내려갔으므로 그의 악보는


언제가 깨끗하였다고 한다. 의아해하던 주위 사람들에게 모차르트는


“나는 머릿속에서 완성된 악보를 그저 오선지에 옮기고 있을 뿐이오”라고.....


 


여기에서 잠시 감상의 포인터를 위하여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작곡의 과정이 완전히


다름을 알고 넘어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베토벤은 한 곡을 끝내기까지 수없이 고쳤습니다.


그래서 곡을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의 악보는 아무도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널리 알려진 "고향곡 제5번 운명"의 경우


1804년에 악보를 스케치하기 시작했는데 4년 뒤인 1808년에 되어서야 완성했을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장애에 맞닥뜨렸지만 좌절하지


않았고 이전보다 몇 배, 몇 십 배 더 노력하여 고난을 극복하면서 걸작들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여기에 "그러면 누가 더 위대한가?” 라는 물음은 우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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