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베토벤
이름     김춘근 날짜     2015-03-11 14:31:16 조회     1621


베토벤의 이름은 우리말로 “덩굴 밭”이라는 뜻이다.


그의 운명은 타고날 때부터 이름값 때문인지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악성(樂聖)은 음악의 성인(聖人)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을 보면 마구 헝컬러진 머리 모습, 어두운 얼굴 등 성인과는


동떨어진 것 같은 이 음악가에게 왜 樂聖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을까?


 


그 해답은 그의 삶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베토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평생 지독한 불행을 마주하면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술주정꾼 아버지의 심한 학대와 그의 못다 이룬 음악가의 꿈을 아들


베토벤에게 기대하면서 생긴 혹독하고도 가혹한 언사와 행동, 어머니 마리아의


심한 우울증과 죽음,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중퇴 학력, 그 속에서도 끝없는


학구열로 지성의 반열에 올랐던 점, 음악가에게 치명적인 귓병에 시달리면서도


불후의 명작들을 탄생시킨 점,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인간


승리의 과정을 고스란히 음악이라는 작품에 담아 세상의 빛이 된 점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음악은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위안과 평화와 구원의


삶이 되는데 일조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음악의 성인으로 불리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베토벤의 위대성에 대하여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의 일평생 동안 따라 다닌 고통 속에 숨겨진 짙은 페이소스, 끝없는 인내와


노력 그것이 있기에 그의 음악이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베토벤은 부단한 노력과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로 인생을 살아왔다.


정규 교육은 초등학교 중퇴이다. 그러나 본 대학의 철학과에 청강생으로 등록하여


부단히 학문에 힘썼고, 자신이 작곡한 곡을 철저히 비판하고 부족함이 있으면


끊임없이 고치고 이렇게 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곡 자체를 새로 작곡하는 험난한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 대혁명의 시기에 영국에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생각에 노예해방운동이 일어났고, 칸트와 헤겔의 철학사상이


꽃을 피우던 때였으며, 괴테, 실러, 빅톨 위고, 윌리암 워즈워도, 바이런, 푸수킨 등


불멸의 명작을 접하면서 사상의 깊이가 고조를 가져 왔고.  철학서적, 문학작품,


희곡, 시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신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호메로스, 셰익스


피어, 유리피데스 등 고전의 탐독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노력이 그의


사상의 깊이를 더해 주었으며, 이것이 베토벤이 불멸의 작품들을 작곡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사실이다.


 


베토벤의 좌우명은 “고난을 헤치고 환희로”이다.


 


베토벤이 사망하였을 때 시신에 대한 부검이 이루어졌고 기록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후 두차례에 걸쳐 다시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어 부검을 시행하였으나 그 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으나 현대의학으로 해석해 볼 때 이경화증으로 일단


진단이 내려진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이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다.


베토벤은 위 귓병으로 49세 때는 완전히 청력을 상실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신체적인 질환을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 어려서 천연두를 앓았고, 17세 무렵부터는


간헐적으로 원인모를 복통과 설사로 일생 동안 고통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고,


지금 보면 궤양성 대장염으로 보인다. 1813년경부터는 기관지염, 류머티즘성관절


염도, 불안증, 우울증 등 극도의 신경과민증인 정신질환으로 동생 카를에게


유언장도 써 놓았던 기록이 남아 있다. 말년에는 통풍과 황달 증상이 심해져서


사망하기 이주일 전에는 복수가 차서 호흡이 곤란할 지경에 이르러 복수를 뽑은


것으로 볼 때 간경화증으로 사망원인이 나왔으며, 수차례 정신적 위기에서 자살을


시도했을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앓았으나 이러한 모든 고통은


오히려 베토벤을 인간적으로 성숙시키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이의 극복을 하는


과정에서 불후의 명작들을 수없이 쏟아내었던 것이다.


수양을 하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심리적, 신체적 고통을 유발한다는 말도 있듯이


인간은 이러한 고통 속에서 보다 높은 차원의 작품이 탄생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후세 음악가들이 이러한 고통의 시기에 가장 완성도를 보인 곡이


“운명”과 함께 최고의 대작으로 꼽히는 “교향곡 제9번 합창”을 들고 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일컬어 “인간의 힘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 위대한 곡,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하여 압도적 감동으로 이끄는 교향곡“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 위대한 베토벤에게 신은 왜 그렇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었는지 !


그래서 그의 음악이 더욱 더 위대한 것이다.


로맹롤랑의 말이 새삼 감명을 준다 “신이 인간에게 지은 죄가 있다면 베토벤에게


귀을 앗아간 것이다“.............


 


베토벤에 대한 위대성과 이야기는 베토벤의 친구이자 시인인 프란츠 그릴파르처의


추도사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베토벤의 묘지 곁에 서서, 우리는 전 독일과 독일 민족을 대표하여, 이제는 사라져


버린 우리 민족 예술의 광휘며, 우리 조국의 완전한 영적 만개로서 높이 추앙받던


그의 죽음을 애도하노라, 독일 운문의 영웅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의 삶은 영원


하리라. 그러나 아름다운 노래의 최후의 거장이며, 영혼이 담긴 협화음의 오르간


이며, 헨델과 바흐, 그리고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불멸의 명성의 계승자이며


증폭자인 그는 이제 가고 없으니, 우리는 이제 여기 서서 침묵하는 운명의 끊어진


현을 애도하노라. 잠잠해진 하프여. 이제 그를 그렇게 부르게 해 다오. 그는


예술가였으며, 그의 존재의 근원은 예술이었으므로, 삶의 가시는 그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고, 마치 추방자가 외딴곳에서 안식처를 찾듯이 그는 예술 그대의


팔에서 인생의 안식처를 얻었도다. 오, 그대 선함과 진실의 영광스런 자매이자


친구며, 상처 입은 마음들을 치유해 주는 향유며, 천상의 존재인 예술이여. 그는


그대 예술에게 처연히 매달렸으며, 그대가 그에게 들어가 속삭였던 그 문이 닫혀


그의 귀가 어두워졌을 때에도, 그리고 그의 어두워진 귀로 그가 그대를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라도, 그는 여전히 그대의 모습을 그 마음에 간직하였고, 그가


죽어 눈을 감았을 때에도 여전히 그것을 그의 가슴에 간직하였도다. 그는 진정한


예술가였으니, 누가 감히 그에게 견줄 수 있을까 ? 돌진하는 거대한 고래가


파도를 밀어내듯이 그는 예술의 극도의 한계까지 유랑하였도다. 비둘기의


속삭임부터 우뢰와 같은 천둥소리까지, 예술의 한계를 넘어 교묘히 잘 짜여진


묵직한 저음으로부터, 각축하는 자연의 힘들이 만들어내는 무법의 소용돌이 속에


모든 계획적인 의도들은 사라져 버리는 그 경이로운 고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그


모든 것을 넘나들었으며 모든 것을 장악했노라. 그의 뒤에 오는 이들은 결코 그를


계승하지 못하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하리라. 왜냐하면 그가 떠난 곳은


바로 예술이 끝난 그 곳이기에. 아델라이데와 레오노레여! 세 번, 네 번 나뉘어진


목소리들의 자손들이여! 천상까지 울려퍼지는 화음이여 환희의 노래여! 더욱 더


빛나고도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여! 백조의 노래여! 칠현의 수금과 노래의 신이여!


그의 무덤에 가서 영광의 월계관을 바치시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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