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양으로서 문화
19세기 매슈 아놀드(Mathew Arnold) 같은 사람들에 의해 대표되는 서구 문학비평에서 문화는 흔히 인간 사고와 표현의 뛰어난 정수라는 의미로 정의되었다. 여기에는 위대한 문학, 미술, 음악 등에 대한 지식과 실천을 통한 정신적 완성의 추구라는 열망이 담겨 있다. 예컨대 우리가 문화인이라는 용어를 쓸 때 흔히 그것은 뛰어나고 수준 높은 교양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게 되는데 바로 그 문화의 개념이 그것이다. 이런 문화 개념에 기초하여 오래 동안 비평가들은 최상의 작품을 찾는데 몰두해왔고 문화란 뛰어난 것을 판별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산업사회가 도래하고 대중사회가 형성되면서 이런 뛰어난 교양으로서의 문화를 갖춘 엘리트층의 지배가 도전받게 되었을 때, 이런 문화 개념의 옹호자들은 물질 문명과 과학기술, 정치, 경제와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문화의 개념을 더욱 방어적으로 고수했다. 대중문화와 대립하는 ‘고급문화(High Culture)’의 개념을 통해 기존의 엘리트적 문화관을 고수하며 대중문화를 저급한 것으로 치부하는 논리나 이른바 순수문화를 주장하였다. 그 결과는 정치, 경제적 영역과 단절된 문화 영역의 분리였다.
2. 진보로서 문화
문화는 한 사회의 정신적, 물질적 발전 상태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의 문화는 문명(civilization)이란 개념과 혼용되기도 한다. 이는 다윈의 진화론의 패러다임을 인간 사회에 적용한 사회진화론적 관점과 관련된다. 서구 문화를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서구 제국주의의 문화관이 그런 것이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문화와 문명이 구분되기 시작하여 문화는 정신적 발전 상태를, 문명은 물질적 발전 상태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된다. 문화와 문명을 사회진화론적 관점으로 보는 시각은 아직도 널리 퍼져 있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보는 서구중심주의적 입장은 콜럼부스 이전에 이미 아메리카 대륙에 살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하고 있던 원주민 인디언의 문화를 부정하는 관념에 입각해 있다. 문화란 서구의 것이고, 인디언은 문화를 가지지 못한 야만적 존재로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미개 또는 야만에서 문화로의 진보라는 관점은 자민족중심주의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3. 예술 및 정신적 산물로서 문화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주로 정신적이거나 지적이고 예술적인 산물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신문의 문화면은 문학, 예술, 종교, 학문, 교육, 패션, 방송, 영화 등의 주제로 구성되며, 이는 신문의 다른 면을 구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영역과 구분된다. 문화를 이렇게 인간의 정신 활동과 관련된 몇 가지 영역으로 정의하는 방식에는 문화를 물질적 생산이나 분배를 둘러싼 사회관계와 분리해 사고하는 관념이 깔려 있다. 여기에는 흔히 배타성, 순수성, 전문성과 같은 개념이 개입한다. 문화는 사회와 무관한 순수한 것이며 고유의 배타적인 영역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이런 식의 문화 개념에서 쉽게 나타나곤 한다. 이렇게 문화를 인식하는 것은 ‘교양으로서 문화’ 개념을 대중문화에까지 확장하면서도 유구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 한 것이다.
4. 상징체계, 생활양식으로서 문화
사회학이나 인류학에서는 흔히 문화를 인간의 상징체계, 혹은 생활양식으로 정의한다. 인간은 상징체계를 통해 사회를 경험하고 인식하며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을 한다. 인간이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상징체계를 습득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며, 그 상징체계가 반영하고 있는 사회의 질서와 규범, 즉 생활양식을 따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양상이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인간의 언어생활이다. 예컨대 한국어에서는 지위, 연령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그러한 언어 규범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위계질서의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언어 규범에 따라 말을 할 때 한국어의 언어 체계가 담고 있는 가부장적 위계질서에 따르게 됨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사회에서 의미질서, 혹은 상징체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그 자체가 문화임을 알 수 있다. 문화를 상호작용과 의사소통, 혹은 그것의 기반이 되는 상징체계라 할 때, 그것은 단순히 정신적 작용의 산물이 아니라 한 사회의 관습, 가치, 규범, 제도, 전통 등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생활양식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문화를 개인, 집단, 종족의 총체적인 생활양식으로 정의할 때 집단 사이의 문화적인 차이는 위계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의 문제로 인식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문화 개념은 앞에서 설명한 문화 개념의 정의 방식들에 비해 좀 더 다원주의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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