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의 위치
클래식 음악은 수많은 음악 중 한 종류입니다.
인간이 처음 말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지구상에는 굉장히 많은 종류의 음악이
있어왔습니다. 사냥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부르던 원시인의 노래부터
컴퓨터를 이용해 만든 오늘날의 첨단 음악까지, 또 아메리카 인디언의 노래부터
아프리카 원주민의 북소리까지 수없이 많은 종류의 음악이 나타나고 사라져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음악에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요? 누가 어떻게 가치를 따지는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요? 누구도 점수를 매길 수 없고 매긴다면 어리석고 교만한 짓입니다.
왜냐하면 시대마다 지역별로 발달한 음악은 그 시대, 그 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알맞은
음악이고 그 고유한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볼까요
누군가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즐겨 입는 옷에 점수를 매긴다고 칩시다.
만일 그 사람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알래스카 원주민의 털옷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다면 과연 그 점수를 다른 지역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고급 옷이라며 아프리까 원주민에게 선물하면 과연 받는 사람이 기뻐할까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입는 옷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듯, 음악도 사람들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바닷가에는 고기를 잡으러 나갈 때 부르는 뱃노래나 바다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부르는 노래가 발달한다면, 농촌에서는 소를 몰 때 부르는 노래나 모내기 할 때
부르는 노래가 발달하겠지요, 그런데 바닷가 사람이 “뱃노래야말로 세상에서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다“ 라고 주장한다면, 농촌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뭐니 뭐니 해도 모내기 노래가 최고야 라고 할 것입니다.
아무리 싸운들 누가 더 낫고 누가 못한지 가려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가려낸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짓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질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인 것입니다.
클래식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클래식이나 대중음악이나 국악이나 모두 음악의
한 장르일 뿐입니다. 이들 사이의 우열을 가리려 하기 보다는 나름의 개성과
가치를 올바로 이해하고 즐기려는 태도가 더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대중가요에 있어 랩은 랩대로, 발라드는 발라드대로, 댄스는 댄스대로, 트롯은 트롯대로
다 개성과 맛이 다르고 특, 장점이 있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왜 클래식 음악을 권하는가 ?
클래식 음악이 특별히 고급스러운 것도 아니고, 현대인의 정서에 가장 잘 맞는 것도
아니라면 왜 모두들 클래식 음악을 중요하게 여기는 걸까요!
왜 음악 시간에는 바로크니 고전파니 바흐니 모차르트니 주로 클래식 음악을 가르치고,
피아노를 가르칠 때에는 모차르트니 바흐의 음악을 교재로 삼고, 태교 음악으로도
클래식이 각광을 받는 걸까요?
왜 수백 년 전의 음악이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연주되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그 몇 세기 동안 만들어진 음악의 성격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7-19세기, 인류는 역사상 가작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한마디로 기독교로 대표되는 중세의 신성의 시대, 소위 문화의 암흑기 시대가
종언을 고할 시점에 발맞추어 진화론, 지동설, 만유인력이 등장하고 과학과
천문지리학이 발달함으로써 항해와 탐험이 이어지고, 상업의 발달과 산업혁명의
결과로 자본주의 시대가 열렸으며 봉건시대가 물러나고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프랑스대혁명을 비롯한 시민혁명,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던 것입니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문화에도 영향을 미쳐 문학, 음악, 미술 등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음악의 경우 종교 음악의 시대가 끝나고 인간을 위한 음악의 시대가 열렸고 여기에
악기의 발명, 화성법의 발달이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바흐,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죤, 바그너, 차이코프스키 등 천재 음악가들이 줄줄이 탄생함으로써
그 어느 시대보다 음악의 완성도가 높아졌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을 이 시대를 일컬어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미의 최대치, 극점을 이룬
시대라고도 합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수단이 이 시대에 완성되었기 때문이죠.
이전 시대의 예술작품이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정신적인 부분만 강조함
으로써 어딘가 부족했던데 비해 이 시대의 작품들은 형식미와 내용이 균형을
이룸으로써 좀 더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시대의 서양음악은 시대와 민족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고,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연주되고 있는 것입니다.
클래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클래식은 200년에서 300년 전 서양에서 그것도 귀족이나 부자들만이 즐겨 듣던
음악인데,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이 꼭 그런 음악을 들어야 하나! 그것이 어떤
의미에선 사대주의 아닌가 !
답을 하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클래식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서양 사람들의 음악, 그것도 200년에서
300년 전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던 음악이니까요.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은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왜냐하면 서양에서 몇몇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즐기기는 했지만, 그 시대의 음악은
가장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고, 가장 위대한 음악 천재들이 만들어낸 인류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쉽게 비유하자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은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같은 문화유적을 탐방하는 것과도 비슷한 것입니다.
피라미드는 21세기 장례문화에 걸맞지 않는 오래전의 무덤이지만 이집트
사람들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오랜 세월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클래식도 비록 21세기 사람들의 정서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인류의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보여주었기에 사랑받아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클래식은 과거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이지만 그 시대, 한 계층의
음악만이 아닌 인류를 대표하는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것입니다.
따라서 클래식을 즐기는 것은 인류가 낳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고 계승하고
것이요 동시에 선조들이 후손에게 남긴 선물을 고맙게 받는 것입니다.
주는 사람이 온갖 정성을 다해 마련했다 하더라도 선물을 받는 사람이 그 가치를
모른 채 외면한다면 제아무리 빛나는 보석이라도 한낱 쓸데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겠지요,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선인들이 평생 혼신을 다해 마련한 위대한 선물을 우리
후손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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